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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십일째-작업완료
 칼럼니스트  | 2009·12·21 04:15 | HIT : 2,962 | VOTE : 274 |
이십일째-작업완료
 
 
이 현장에서 우리의 생명은 어디까진가? 사장이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가 다 내리면 우리는 보따리를 싸야 한다. 지하상가에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 그 누구도 깨끗해진 외관을 보고 우리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서, 누가 이 보수공사를 계획했고, 돈을 댔으며 도면을 옆에 낀 멋진 디자이너와 건축 관리자만을 생각하게 된다.
사장이 이야기한 주간 일은 거의 끝났다. 이제, 뜯어낸 건축폐기물이 실려 나가듯, 수십 년 묵은 먼지가 묻어 얼룩진 손으로 작업복 가방을 멘 노동자들도 쓸려나가야 한다.
 
“저 일을 주간으로 돌리는 것은 어때?” 통로를 돌며 고민하던 김씨는 은근히 말을 건넸다. 당장 일을 만들지 않으면 보따리를 싸야한다.
“우린 좋지만, 누군가는 피를 보겠지.” 그 작업은 야간 조의 몫이다. 사장 처지에서 보면 혹할 이야기다. 주간 조로 일거리가 넘어오면 사장이 지불해야 할 부담이 3분의 1이 절약된다. 그럼 우리조 생명이 일주일 이상 연장된다.
김씨는 최종 결정권자인 소장과 이야기어 나누어 설득했다. 그 말을 들은 사장은 기꺼이 주간에 하도록 허가하고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리하여 야간 조와 주간 조의 생명주기가 비슷해졌다. 사장이란 계급은 궁극에 가서는 이익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진리라고 여긴다. 친구고 나발이고 일꾼들은 다 그놈을 그놈으로 여긴다.

김씨는 흡족하게 웃으며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민방위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유인원처럼 내린 팔이 흔들렸다. 반코팅 장갑은 끼자마자 검은 얼룩이 묻었고 어깨와 허리에는 먼지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사다리를 들고 그를 따라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돈 몇 천원 잃어 버리면 그러거니 하지만 담배 한갑을 잃으면 너무도 화가 난다고. 일은 할 수도 안 할수도 있지만 남들하는데 나만 잘리면 참을 수없을 때가 있다. 그는 지금 역전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달리 사리가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가급적 자기 중심적으로. 나는 나만 건들지 않으면 모든 것을 허용하지만, 그는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내놓으면 마치 광우병을 담아 주는 사람을 보듯 광우병에 걸린듯, 강하게 공격적 항의를 한다. 덕분에 쇠기기 몇 번 못 먹은 적도 있다. 지고는 못 사는 전형적인 사람이다. 일반 바둑은 5급이지만 내기 바둑은 5단이다.
 
작업을 어떻게 배치받는 것인가는 팀장 능력이다. 우리를 주간 조로 밀어낸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우리가 야간 조의 일거리에 손을 대는 일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저 사람 사는 사회기에 그러한 일이 벌어질 뿐이다. 바닥에 떨어져 되는대로 넘어지는 젓가락이 아니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듯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김씨가 작업을 연장했음에도 손을 떼고 보따리를 쌌다. 올해 현장 작업은 이로써 끝이다. 시작한 글쓰기를 마무리 해야 한다. 나는 보따리를 쌌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이반 데니소비치’처럼 확보한 작업으로 하루 노동을 즐기려 한다. 내가 비운 만찬 식탁 한자리에 친애하는 다른 김씨가 앉기로 했다. 그는 친구덕에 좋은 패를 잡았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흠뻑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여, 언젠가 을지로 3가 4가를 잇는 지하통로를 지나면 나와 내 친구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당신들의 머리 위를 덮은 천장 안에서 이십일을 보냈으니 말이다.
하여튼, 나는 또 실업자가 되었다. 다음에는 어디 현장으로 갈 것인가? 누구와 하고 있을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가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사장들이 혹은 친구들이, 모르는 인연들이 벌써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일을 즐겨야 할 때다. 미친듯이, 100미터를 전력으로 뛰듯 뭔가를 해야 한다. 안그러면 처가 내 등을 후려칠 것이다.
"설레발 그만 치고, 빨리 돈 벌어와 이 화상아! 떠벌이 알리 같으니. 돈이 있어야 애새끼들 콩나물이라도 물리지, 남들은 바퀴달린 가방끌고 비행기 타는데 손수레 끌고 종이 주으러 다니게 생겼어!" 확실히 마누라 이야기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돈이 필요하다. 주머니가 좀 두둑해야 아무리 굶어도 배가 든든하다. 삶의 좌표는 몰라도 삶의 축은 생계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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