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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나흘째, 민방위 모자
 칼럼니스트  | 2009·12·01 11:31 | HIT : 3,121 | VOTE : 257 |
 
오후 10시 상가 통로에 3열 횡대로 늘어서 안전교육을 하는데 행인들이 힐끗거리며 꽤 지나간다.
체조가 끝나고 김형이 살짝 부른다.
구석으로 따라 가보니 앉아서 살짝 웃으며 종이 가방을 여니 몇 벌의 연갈색 겉옷과 민방위 모자가 나온다.
삼십여 명 일꾼들 종이 커피 하나씩 들고 행인들과 섞이어 서성이며 흘러다닐 때, 나 혼자 가운데서 웃옷 벗어 갈아입었다.
민방위복은 나만 입고 민방위 모자는 셋이 나누어 쓰니 딱 만화 속 인물 같다.
 
콧수염까지 바비킴 닮은 젊은 친구 하나가 우마에 오르다 바퀴가 굴러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조끼는 수십 년 묵은 먼지로 새까맣게 얼룩졌으나 생긴 몸뚱이 하며 밤샘을 나온 싸가지가 건강하기만 하다.
저, 친구는 내가 찍었어, 모임에 가입시켜야겠어. 했는데, 친애하는 김형이 그에게 뭐라고 소곤거리더니 데리고 가서 망할 조끼를 벗기고 민방위 겉옷을 입히니 만화 속 인물이 하나 더 는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나누어 피며 김형이 하는 말, 옷을 주면서 그랬지 이 옷을 입는 순간부터 우리 식구라고.
 
어제 아침 김형이 일을 마치고 백병원 근처 현장에 갔다가 작업복 할 만한 몇 가지 챙긴 것이 민방위복과 모자였다.
"회사가 부도났다고 하던데, 여성 팬티와 블라우스까지 굴러다니더군."
밤늦게 행인들이 구두 소리를 울리며 딱딱거리며 지나간다.
"제대로 망했군!"
셋이 민방위 로고가 붙은 모자를 쓰고 일을 하니 남들이 돌아서서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 것 같았다.
이씨가 벗어 버리고 나와 김형은 로고를 뜯었더니 조금은 똑똑해진 것 같았다.
 
이씨 차를 타고 고강동까지 퇴근하는 데 마주오는 출근 길 승용차 전조등에 눈이 부셨다.
피곤한지 깜빡깜빡 놀라며 졸음이 왔다.
내가 왜 이 밤샘 일이 익숙한가, 생각해 보니 하루걸러 노고산으로 출근해 밤을 새웠던 방위 경계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제는 방위병 민방위 시절도 간, 오십을 바라보며 밤샘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름진 사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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