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 창

 

 

 

 

 

 

>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우울한 날 우울한 소식
 칼럼니스트  | 2009·11·27 00:33 | HIT : 2,973 | VOTE : 305 |
        어제 54년생인 황 사장의 발인을 했다고 전화를 받았다. ‘아, 황 사장!’ 그는 남태령인가? 그쪽 어디의 무슨 터널이 있다고 하는데 막 나와 다른 차를 들이받아서 그 자리에서 사망한 모양이다. 이 년 전인가? 삼 년 전? 그의 트럭을 타고 이리저리 한 겨울내 봄까지 한 4개월 동안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녔다. 길게는 한달씩 일하는 현장도 있었지만 ‘발전기덕트’를 할 때는 하루 건너 현장을 옮겨 다녔었다. 그 옮겨 다니는 짓거리가 어찌나 한심한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막노동이지만 ‘보따리 떴다방’은 되기 싫었다. 그만두겠다고 선언 한 날, 그는 이별주를 사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자신은 반드시 재기한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건 희박해 보였다. 황 사장은 2000년도쯤에 부도를 맞아 평생 벌어 마련한 꽤 값나가는 아파트를 팔았고 나처럼 사십대에 난 늦둥이가 있었다. 가끔 자기와 나는 70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놀리곤 했었다. 이번 추석 때 함께 일을 하자고 전화를 했을 때 받지 않았다. 안부 전화는 자주 하지만 함께 일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가진 돈이 없어 월급도 늦고, 보따리는 더 이상 사절이었다. 근래 형편이 폈는지 서울대 현장에서 하청 맡아 일했고 어디 터미널도 손을 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의 말대로 재기가 될 정도로 꽤 올라선 것이었다. 한번은 그의 트럭에 자재를 잔뜩 싣고 ‘상주’를 내려가는데 졸다가 말다가 운전을 해 사고 날까봐 겁이 났다. 반쯤 갈 때까지 억지로 말을 시키며 졸음을 쫓았지만, 그 짓도 지겨워 나중에는 입을 닫았다. 귀찮아서 사고가 날 테면 나라는 식이었다. 용케 졸음운전을 하면서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이번 사고 소식을 듣고 아마 졸음운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황 사장과 일을 할 때 만난 사람에게 그의 부고를 전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한마디씩 한다. 나도 건설 노동자이자 직종 선배인 그가 그렇게 비명횡사를 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노가다의 최후라는 것이 장소가 때가 다를 뿐 무엇이 다르겠는가! 남긴 어린 자식들의 운명은 어찌 될는지, 늘 고생만 시켰던 처에게 한 번 더 부담을 주는 꼴이고, 그래서 가족들의 불안한 미래와 애써 즐거움으로 덧씌워도 흑백 낡은 영화 같은 과거이니, 한 노동자의 삶이 너무 애처로울 뿐이다.

며칠 전, 그와 발전기 덕트를 했을 때 일어난 일을 기록한 ‘발전기 소사’를 인천작가회의 ‘열린 작가들’에 넘겼었다. 아마 다음달 중순이나 말쯤에 책이 나온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글을 썼으니 조금이나마 그의 마지막 길에 위안이 된다.

‘발전기 소사’를 넘기려 마음을 먹고 퇴고를 위해 하루를 쉬었는데, 다른 이들도 일을 못했다고 전화가 왔다. 현장에 조폭들이 잔뜩 와서 출입을 막아 돌아왔다고 했다. 부평역 근처인데 8년째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시작된 건물이어서 아직 이권분쟁이 해결되지 못해 그렇다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일은 시작되었으나 엘리베이터 앞에 조폭들이 서너 명씩 지키고 있어 작업분위기가 좀 어색했다. 살찌운 몸에 어기적거리며 걷는 걸음, 무엇보다 그들의 앳된 얼굴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K씨말대로 ‘세계를 고민’할 청춘이 현장에서 골판지 깔고 잠자며 전기 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종일 의자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니. 서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그 나이 때에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었다. 어제도 작업을 못했다. 출근을 했더니 어디서 모았는지 맹꽁이 같은 그런 친구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현장 밖에는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팔짱을 끼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현장 안에는 불 깡통에 불을 피워 불을 쬐는 친구들도 있었고 바람막이를 하려고 석고보드를 세워 후비진 구석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젊은 친구들이다. 베니어판이 깔린 바닥에 누워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집회 신고를 하고 그렇게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집회 신고도 일반화가 된 모양이다. 어제 쉬고 오늘 출근을 하니 거짓말처럼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현장이 깨끗했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까 별일이 다 생긴다.

오늘 조폭들이 보따리를 쌌듯 나도 보따리를 쌌다. 마지막 남은 나의 일은 벽돌을 까는 일이었다. 종일 오래된 벽돌을 털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씻으려고 물이 나오는 1층 화장실로 가니 어떤 노인이 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다. 문짝이 떨어져 한쪽에 세워둔 화장실이었는데 좌변기 사용에는 불편이 없었다. 나는 들어가 세면기에서 씻으려다 차마 그 모양새가 꼴이 아니어서 그만두고 노인을 마주 보고 지하 1층에 화장실이 있는데 여기서 보십니까? 했더니, 노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바지춤을 잡고 몰랐다고 한다. 나는 말로 터트리지 못하는 화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노인과 나 그리고 처한 현실이 분노를 넘어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래 노인은 몰랐을 게다. 나도 처음에 화장실이 이곳 뿐 인줄 알고 일을 보려 했으나 도저히 볼기를 내놓고 앉을 수가 없었다. 문짝이 삐딱하게 세워져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보이는데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 준단 말인가! 그러다 우연히 지하 1층에 제대로 된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식당 아주머니에게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급한 김에 1층에서 일을 본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좌변기 앞에 사인펜으로 ‘대변은 지하 1층 화장실로’라고 써 놨었다. 노인은 그 글을 못 본 것이다. 결국 나는 비누를 들고 지하 1층 세면장으로 내려와 씻었는데 내 뒤의 친구들은 노인을 외면하고 씻고 나왔다고 했다. 그들은 지하 1층에도 세면장이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엉성한 현장이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현장이 너무 오래 방치되어 5층에는 비둘기들이 떼 지어 날아다녔다. 5층 천정은 7미터쯤 되었다. 가끔 5미터 반쯤 되는 3단 우마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비둘기 날갯짓에 놀라곤 했다. 뒷문 천장 빔 구석에 비둘기는 전기공 하나가 돌을 던져도 끝까지 날아가지 않았다. 인간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계속 뭔가를 던졌지만 비둘기는 자리를 옮길 뿐 날아가지 않았다. 며칠 전 그곳에 올라가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빔에 비둘기 집이 있었고 안에는 하얀 알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놈을 건들고 싶지 않았지만 부득이 하게 일 때문에 바로 앞까지 가니 어디론가 날아갔다. 며칠이 지난 오늘도 구멍을 터는 일 때문에 올라가 봤는데 알이 아직까지 있었다. 다른 작업자들도 알을 건들지 않는 모양이다. 지하에는 집을 나온 아이들이 살다가 나간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벽에 쓰인 낙서들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황 사장이 연장 보따리를 풀었다가 쌌다 한 곳이 바로 비둘기 날아다니고 화장실도 변변치 않은 이러한 현장이었다. 내가 그의 보따리 행각이 싫다고 뛰쳐나왔건만 지금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단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들을 토대로 직종 모임을 만들어 지금은 아쉬운 대로 모임의 틀을 갖추어 가고 있다는 일이다. 황 사장과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나는 현장 생활에서 느끼는 이러한 비애 때문인데, 그는 알았나 모르겠다. 그의 운명에 차씨 노인이 문자를 주었듯이 나도 한 마디 뇌까리고 싶다.

황 사장, 착한 사람인데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178   베이징에서 온 형9-플로리다 장씨  칼럼니스트 10·08·15 3015
177   베이징에서 온 형8- 회식  칼럼니스트 10·08·09 3129
176   좀비  칼럼니스트 10·07·14 3222
175   베이징에서 온 형 7-아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칼럼니스트 10·06·18 3293
174   베이징에서 온 형6 - 사장  칼럼니스트 10·04·22 3103
173   베이징에서 온 형5 - p.v.c 닥트  칼럼니스트 10·04·22 3091
172   베이징에서 온 형4 - 내 일당  칼럼니스트 10·04·19 2824
171   베이징에서 온 형3 - 양씨 아저씨  칼럼니스트 10·04·18 2723
170   베이징에서 온 형2 -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칼럼니스트 10·04·18 2767
169   베이징에서 온 형  칼럼니스트 10·04·12 2478
168   한 친구가 다친 날  칼럼니스트 10·01·26 3300
167   신년 산행  칼럼니스트 10·01·02 2796
166   이십팔일째, 씁쓸한 퇴장  칼럼니스트 09·12·30 2907
165   이십일째-작업완료  칼럼니스트 09·12·21 2974
164   열나흘째, 경쟁  칼럼니스트 09·12·11 3112
163   열흘째, 세계를 굴리는 손 2  칼럼니스트 09·12·07 3054
162   나흘째, 민방위 모자  칼럼니스트 09·12·01 3121
161   첫날, 불확실성의 원리  칼럼니스트 09·11·28 3226
  우울한 날 우울한 소식  칼럼니스트 09·11·27 2973
159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3  칼럼니스트 09·10·19 2764
123456789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