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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칼럼 > 최경주


건설 일용노동자로 오래 살아 왔습니다.
현재는 <건설연맹 서울건설지부>에서 조합원으로 있습니다.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3
 칼럼니스트  | 2009·10·19 11:12 | HIT : 2,750 | VOTE : 325 |



3



          스피커에서 숙소 넘어 동쪽에 있는 광장으로 모이라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전승우의 말투였다. 그는 마치 이 싸움을 위해 이곳에 와 일하는 사람 같았다.
동호는 바다가 보이는 광장으로 갔다가 열렬한 선동과 결의를 듣고 빠져나와 현장을 둘러보았다. 사막의 차가운 밤공기가 대기에 가득 찼다. 동호는 정문에 와보고서 부들부들 떨었다. 현장 입구에 차단 목을 설치하고 사우디 군인들이 기관총을 겨누고 있었다. 사우디 방위군들 보면서 이국만리에서 죽어나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정씨는 뭐가 좋은지 식당 앞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불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군가와 애국가가 종종 들렸다. 아침에만 해도 별 탈 없이 장비들과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고 오가던 풍경이었다. 평소 같으면 야간자만 오고 갈 한적한 시간에 아무도 자지 않고 있었다. 사우디 밤하늘에 별은 가득하고 거의 찬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차가운 날씨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더 떨리게 하였다. 담요를 가지고 나와 뒤집어쓰고 있을까 했지만 들어가자마자 경찰들이 총을 쏘고 닥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보고 있다가 그들이 쳐들어오면 잽싸게 항복을 하던가 그들이 오지 못하는 곳으로 달려가 숨으려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해?”
정씨가 다가왔다. 그는 오후 내내 보이지 않더니 정문 바리케이드를 거니는 동호 쪽으로 왔다.
“형은 뭐하러 다니는 거요?”
“뭘 뭐냐? 오늘 무지하게 바빴지, 석산에 가서 사람들 태우고 왔고 준설선 찾으러 부두에 갔다가 허탕만 치고 왔지.”
“준설선은 왜?”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서지. 큰마음을 먹고 갔는데 바다가 허전한 거 있지. 추위에 여기저기 좀 몰려다니다 바람만 쐤어, 몸살 기운이 있어.”
“무섭지 않아?”
“무섭기는 무슨, 신나! 내가 여기 온 지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바로 이런 날이 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 매일 지독한 더위에서 죽으라 일만 하다가 일다운 일을 하는 것 같아. 일꾼들이 이런 면이 있는 줄 정말 몰랐어. 어떻게 지금까지 성질을 죽이고 말없이 살아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다른 것 모르고 하여간 가슴이 후련하지 않아? 관리자 새끼들 도망치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이렇게 뛰면서 머리를 감싸고, 다 맞아도 머리는안 된다 이거지. 엉, 자 보라고 이렇게 뛰더라니까? 이 넓은 현장을 스스로 끌로 가는 듯 개소리를 까대더니 지금은 흔적도 없어. 일꾼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고 놀고 돌아다니고 불을 피우고 아무 문제가 없어. 지금 이 광경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돌격대가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낸다고 불만도 있던데.”
“누가 그러디? 항상 몇 놈이 문제기는 하지. 봐라! 현장이 조금 변하면 누가 좋겠냐?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나 안 하고 구경만 하고 거저먹겠다는 놈들이 있는 거지. 임금이 오르면 제일 먼저 가서 받을걸. 대충 무리지어 움직여 주기만 하면 이렇게 고생하고 조금 나아지는데 그 고생을 남한테 하라는 심보지. 하긴 당직새끼들 언제부터 우리 편이었다고 그 상판으로 떳떳하게 들고 다니며 목총을 높이는 꼴이란 역겨운 꼴이지.”
“사실 나는 조금 무서워. 사우디 사람들은 우리를 하찮게 여기잖아! 저기 총 들고 서 있는 거 보이지?”
“아무리 우리가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우리는 외국인들이야. 총으로 쏠 수는 없겠지. 저기에 주눅이 들면 또 따귀 맞아 가면서 일해야 한다. 자 봐라.” 정씨는 돌을 들어 그들에게 던졌다. 어두운 밤에 돌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그들에게 떨어져 굴러갔다.
“야, 쏴봐라! 갈기란 말이야!” 그는 몇 발자국 앞으로 가서 가슴을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동호는 으스스한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우디 방위군의 조명이 그를 향해 비추어 졌다. 그의 몸은 조명에 노출되었다. 동호는 밤안개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놈들, 총이나 제대로 다룰 줄 알겠어? 이 몸이 월남에서 베트콩들과 총질을 하면서 직접 전쟁을 한 몸이시다! 야! 야! 야!” 정씨는 온 힘을 다해, 마치 총이라도 쏴보라는 투로,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빠져 나오도록 고함을 질렀다. 끝내 목에 살이 걸려 기침을 하고 말았다.
“형?” 동호는 조명과 안개 그리고 두 팔을 벌리며 주변을 울리는 고함을 치는 정씨의 호기어린 광경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가슴이 떨리는 아름다움이었다.
“난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아. 많이 깨달았지. 베짱이야! 없는 놈은 죽는다. 밟을수록 대가리를 쳐드는 거야. 자, 밟아라! 내가 네 발아래서 죽어주마 하는. 이 싸움이 있기까지 얼마나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겠어? 알고 보면 늘 우린 싸워 온 거야. 하지만, 싸우고 나면 고통스러우니까 잊고 싶어 하거든. 그리고 어지간하면 대충 무마해서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들을 하는 거지.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기억도 하지 않아. 그냥 떠들다 말겠지 하는 거지. 이번에는 달라, 뭔가를 보여줘야 해. 국내에서도 다 알게끔 말이지. 박통이 놀라 자빠져 오줌 싸는 꼴을 생각해보라고 어떤가? 기분 좋지 않아?”
“무서워. 누가 그러는데 형들 대부분 잡혀가 고문당할 거라는데.”
“그래서 고문하고 겁주는 거야. 꼼짝 마라 그러는 거지. 난 내일 죽더라도 저 새끼들 놀라 꼬꾸라지는 꼴을 보고 싶다. 노다가 잘못 건들면 이렇게 되는구나? 이놈들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장난질하면 망하는구나? 그걸 알게 해줘야 하는 거야. 어설프게 떠들다 붙들려 가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아예 하는 것 같이 해야 놈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관료들은 어떻게 입에 발림으로 대충 무마하고 넘어갈 텐데, 이 정도로는 안 하니만 못해.”
그는 가슴을 때리며 입김을 뿜어내며 당당하게 말을 했다. 그는 서너 시간 만에 많은 것을 배운 것이 떠들어 댔다. 아니면 평소 뼛속 깊숙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이! 정씨 빨리 와!”
누군가 정씨를 불렀다.
“너는 여기 얌전히 있어. 숙소에 들어가지 말고 현장을 지키라고 이 형님은 정말 일다운 일을 하러 가야 하니까.”
그는 동호의 어깨를 잡고 흔들더니 마치 전장이라도 떠나는 병사처럼 의연하게 말을 하고는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운동장 곳곳에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추운 날씨를 이겨 밤을 지새우려고 모닥불을 피웠다.
동호는 가까운 모닥불이 있는 쪽으로 갔다. 더러는 낯이 익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팔을 비비며 그들 사이에 끼어 나무가 타들어 가는 모닥불에 좀 더 가까이 갔다. 국내에 있을 때 불을 쫴보고 사막에서는 처음이었다. 나무 타는 냄새가 집 생각나게 하였다.
“귀국 며칠 남지 않았는데 별일을 다 겪는군.”
중년의 사내 하나가 담뱃불을 붙이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동호에게 자리를 내 주며 담배를 권했다. 동호는 담배를 거절하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온통 주름이 져 노동에 대한 이력을 말해주었다.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소?”
“작년 가을에 왔습니다.”
“젊어 보이네. 이 싸움이 끝나면 그나마 조금 나아질 것이오. 그래 봐야 이 지독한 사막의 더위가 가시지는 않겠지만. 사람 꼬락서니는 조금 나아지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요?”
“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다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그가 쳐다본 남쪽 하늘에서 비행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높은 놈 하나 오는군.” 중년 사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높은 사람이라니요.” 비행기 소리가 가까워 오자 하늘에 반짝이는 붉은 불빛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큰 현장이 이 지경이 됐는데 대사든 소사든 오지 않겠소. 자칫 잘못하면 이 중동에서 통째로 쫓겨날 텐데. 지금쯤 발칵 뒤집혀 있겠지. 오죽하면 전쟁에나 쓰는 기관총을 설치하고 난리를 치겠소. 내가 봤을 때, 별일 아니고만. 그러기에 꼭 일이 터져야 움직인다니까. 내가 보기에는 관료들이 그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니까. 그래야, 일이 생겨 밥값을 하는 것처럼. 사람이 거의 죽어 자빠져 들고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엎어져 할딱거려도 못 본 척하는 거기. 한마디로 무식한 놈들이 따로 없다는 거지. 아니면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겠소, 안 그렇소?”
쌍발기 비행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현장 근처를 선회하더니 서북쪽 시내로 날아갔다.
“어느 놈인지 아주 오줌이 지리겠구먼.” 중년 사내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다른 이들도 따라 웃었다.
“아저씨는 안 무서우세요?”
“무섭기는, 지금보다 더 일을 저질러도 일꾼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니까. 우리를 귀국시키고 나면 누굴 붙잡고 일을 시키겠어. 결국, 이 지경이 된 것도 자기들 책임인데 말이야. 우리가 여기서 데모질하러 온 것은 아니잖소. 하도 참다 참다 못 참으니까 들고 일어나는 거지. 내가 국내서도 그렇고 태국에서 여기서도 크고 작은 소요를 겪어 봤을 때 관료들이 하는 짓거리는 뻔하지. 대충 요구 들어주겠다고 하고 주동자 색출한답시고 잡아다 귀국시켜 감옥에 보내고 큰 잘못을 용서해준다 생각하고 또 일을 시키는 거지. 마치 큰 선심이나 쓰듯이 조금 그야말로 줄 것을 당연히 주면서 눈곱만큼 해주면서 온갖 생색을 내겠지. 단지 책임자랍시고 앞선 사람이 그 고통을 치르는 거지. 아마 이 정도면 되게 혼이 날 걸. 그걸 알면서 나서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우리는 딱 중간에서 구경하다 대충 뒤로 빠지는데, 역시 사람 사는 곳에는 인물이 따로 있더라고, 그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가 숨이라도 쉬고 곯지 않고 산다고나 할까. 여기서 불 쬐거나 돌 좀 던지고 차 좀 때려 부순 사람은 아무 탈 없을 거요. 세상사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 그나저나 관리들 일그러진 상판대기를 보면서 일을 해야 하는 데 귀국이라니. 아쉬워.”
“한국에 들어가서 쉬었다고 또 나오시면 되잖아요?”
“아니요. 이젠 나오지 않을 거요. 내가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어머니 돌아가시는 것도 못 봤다니까? 이게 사람 새끼가 할 짓입니까? 아, 한번은 어머니 아프다고 편지가 왔는데, 일주 후에 또 한 장이 왔더구먼. 열어 보지 않고도 알았지. 돌아가신 날 딸내미가 부친 거야. 돈이 다 무슨 소용이요. 고생한 값도 안 되는 것을.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나 싶다니까. 혀가 빠지게 일을 한다고 생활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산업전사고 나발이고 그건 덤핑공사에 헐값으로 임금을 써서 메우겠다는 이야기고, 내가 일하는 것이 사람 노릇 하자고 하는 일인데 어머니 마지막도 못 보다니. 사람 꼴이 아닙디다. 젊은 양반 안 그렇소?”
“그렇죠.”
그는 담배를 한 대 다 피우더니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 싸움을 할 때야 제대로 쉴 수가 있으니. 나는 어디가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지. 젊은이도 대충 눈치 봐서 구석에 박혀 쉬라고. 이거 며칠 못 가네. 싸움도 길이 나야 잘하는데, 노가다는 아직 길이 안 났어. 회사에 반은 속고 반은 얻어내겠지. 매일 귀국하고 들어오고 사람이 자주 갈리니 죄 딴생각들이야. 나부터 말이지. 하여튼 아쉽네. 놈들의 어쩔 줄 모르는 상판대기를 봤어야 했는데. 껄껄껄.”
중년의 사내는 웃지만 다른 이들은 웃지 않고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숙이거나 담배를 물고 허공을 쳐다보았다. 마이크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공포를 이기게 하려는 선동일 것이다.
동호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멀리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엉이 울음도 들렸고 박쥐들이 날아다니는지 어둠 속에서 검은 것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1977년 3월 14일 새벽 2시, 주베일 시 북부 해변 비행장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한국 대사가 오는 미공병 쌍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유등의 불길을 따라 활주로 따라 쌍발기가 서서히 내려와 미끄러지듯 긁는 소리를 내며 착륙하였다. 비행기 프로펠러 돌고 모랫바람 속에 비행기 문이 열리면서 대사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사는 긴장된 얼굴로 그를 맞이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미공병단 사령관, 사우디 해군 사령관, 주바일 시장과 경찰서장, 사우디 동부지역 군사령관, 동부지역 방위군사령관, 정보 책임자 미공병단의 해군기지 공사책임자, 한국 건설회사 간부들 30여 명이 대사를 맞이했다.
대사는 차례대로 악수하고 간단한 의견을 나누었다. 미공병도 이번 사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현장의 대부분 노동자도 소요에 참여해 미군관리와 가족들을 대피 놓은 상태였다. 대사 일행은 근처 건설회사 사무실로 향하고 날이 새면 사우디와 미공병과 사건 대책에 대해 논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김지수는 사우디에 퍼져 있는 노동자 중 관리대상 이름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 넓은 현장에 아는 사람이 딱 하나 있다. 김대위라고 불리는 사내였다. 김대위는 삼십 대 중반이긴 하지만 꽤 신중하고 온건한 입장을 가진 관리대상자였다. 그가 특별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 중동에 온 것은 아니지만, 노동쟁의 경력이 있어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 외에 어떤 모르는 사내들이 있을까 상상을 해 보았다. 그때 대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자네는 언제 왔나?”
대사는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중정 파견 직원인 김지수 보고 놀랐다. 대사관에서 먼저 떠났다는 말을 들었지만 미공병 비행기를 얻어 탄 자신보다 먼저 와있으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제 대책회의 마치자마자 미공병 수송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역시 요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먼. 근데 이 현장 소요가 단순 소요사태인가 아니면?”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그쪽 움직임으로 봐서는 우발적이고 단순 소요인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한 외부 자극이나 돌발적인 어떤 행동이 없을 때는 더는 악화 되거나 하는 일을 없을 것입니다. 단지 소요 규모가 크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사람이 많으면 문제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나마 이 현장이 다른 곳보다 열악한 현장 조건에서 생긴 관리상 문제라 해결지점도 복지와 임금이라 복잡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사우디 정부 쪽 반응인데 만만치 않습니다.”
“그럴 테지. 그게 제일 중요하지. 사우디 정부 쪽 반응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
“일단 이번 사건에 나설 수 있는 사우디 쪽 책임자들과 성향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일단 현장 문제를 빨리 정리하는 데로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하나 본국에서 충격이 좀 큰 모양입니다. 곧 중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보낼 것 같습니다.”
“회의 때문에 사람들이 기다리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그런데 사전에 전혀 몰랐나?”
“옆 현장 직원 납치 사건을 조사하면서 현장 상황을 짐작하기는 했지만, 폭력사건으로 발화될 줄은 몰랐습니다.”
김지수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둘은 여러 회사 직원들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을 하고 곧바로 직접적인 소요배경과 현장 현황에 대해 보고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노동자의 비조직적 속성과 예측불허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할 뿐 본질적인 소요사태의 본질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피해갔다. 사실 회사직원들로서 다른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이나 군대식으로 규율을 강요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충 얼버무리는 선에서 인정하고 넘어갔지만, 대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회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렇다고 현장을 운영하는 회사를 질책하고 소요를 일으키는 노동자들을 두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지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직원들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소요사태가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본국정부와 회사들이 수주 우선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풍토 속에서 충분히 예고된 사건이었다. 간간이 터지는 폭력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겉으로는 우발적이지만 노동자가 회사 직원을 바라보는 가슴속에는 이미 좁힐 수 없는 분노가 있었다. 지난해 여름 터진 직원 반장 살인사건도 그런 예였다. 이곳 주베일 인근 모 회사에서 터진 사건이었다. 일곱 명의 일꾼들이 집단으로 직원 반장을 때렸는데, 그중의 하나가 삽으로 후려친 게 반장 목을 부러뜨린 사건을 만들었다. 그 노동자는 살인죄로 국내로 귀국조치 되어 형사 처벌을 받았다. 너무 더워 날씨를 탓하기도 하지만 열악한 조건에서 견디기 어려운 강압적인 관리가 순간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심지어 굴착기로 작업반장을 찍어 중태에 빠뜨린 일도 있고, 관리자 숙소를 장비로 들이받아 사람이 다친 일도 있었다. 집단적인 소요는 작업자가 작업 중에 사망사고가 원인이 되어 파업하는 때도 있고 이곳처럼 관리자의 폭행이 원인이 된 곳도 있지만, 그 모든 근본에서 비인간적인 근로자의 처우 문제가 실질적인 이유가 된다. 누구나 알지만 좀처럼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간혹 외국 관리자들을 만나면 한국 관리들에 대해 고개를 흔든다. 흔히 하는 말로 골통이나 독종이란 어감이 들어가 있는 말을 하곤 한다. 이번 사건도 외국관리들은 무조건 회사나 정부의 태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불가능한 일을 근로자들의 피와 땀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소요’ 근로자로서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할 때면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단지 더위 탓일 뿐이다! 간단한 말이다. 회사 간부들과 이야기할 때면 종종 그 말을 쓴다. ‘이곳은 너무 더워서 말입니다. 사람을 돌게 한다니까요. 이렇게 더운데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그저 몸조심하는 게 상책이죠.’ 그럴 때면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외면을 한다. 회사 간부들은 노동자를 인간대우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아랫것들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있으니 그들에게 명령이 아닌 부탁 혹은 점잖은 지시란 상상할 수도 없다.
대사가 회사 직원들은 어디에 있는가 물었을 때 그들은 피신했다는 말을 썼다. 다른 회사로 숨어들어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김지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늘 같은 군대 고참처럼 행동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꼬리를 감추고 줄행랑을 칠 거면서 때리기는 왜 때리는가! 관리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기본적 습성이 그렇다.
김지수는 대사가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사건의 해결에 적극적이었고 모든 관점에는 애국심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애국심이 근로자의 처우개선에는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중간적인 입장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불타는 사막 한가운데서 우리가 대역사를 하였노라!’ 하는 관료로서의 입장이다. 그는 날이 새면서 현장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전무 하나가 반 죽어 나온 것에 비하면 그는 소요를 일으키는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 봐주는 뜻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대사의 현장 진입을 막는 회사간부들도 있었지만, 대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죽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 자기 국민 손에 죽겠다고 했다.
김지수는 대사의 결단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안에 여러 인물 중 김대위가 있다는 것이 안도가 되었다. 그는 빨갱이적 기질이 다분히 있으면서 한편으로 상당히 합리적인 면이 있었다. 그와는 대화가 되었다. 안에서 나오는 정보에 의하지 않고도 십중팔구 김대위도 이 소요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 지난번 관리자 납치 사건인데 참고 조사를 하면서 만난 적이 있어 그의 성격을 알고 있다. 말이 되는 인간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판단이나 해결에 도움이 된다.
다음날, 대사의 차량은 호위 차를 앞세우고 비무장으로 현장으로 향했다. 김지수는 앞차에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으로 가면서 몇 개의 사우디 방위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지나야 했다. 바리케이드 넘어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현장이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동호는 광장 한쪽에서 앉아 졸고 있다가 일어나 아라비아의 새벽 여명을 보고 있었다. 끝도 없이 파란 하늘에서 해무가 몰려오고 있었다. 수평선과 하늘이 맞아 있었고 바지선들이 고요하게 잔파도가 일어나 밀려오는 바라에 떠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이 들었다. 모닥불에서 불씨가 남아 연기가 피워 오르고 있었고 앞뒤로 사람들이 담요를 덥고 누워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룻저녁 만에 꽤 지쳐 보였다.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누군가 높은 사람이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곧이어 마이크에서 본국 대사가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을 해 주었다. 동호는 벌떡 일어나 정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간밤에 그 비행기가 대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날아온 것이다. 대사가 구세주처럼 예감되었다.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공기마저 가볍고 맑게 느껴졌다. 정문으로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사람이 대사를 보려고 모여들었다.
“난 내키지 않는단 말이오.” 전승우는 화를 냈다. 그 주변 사람들이 정문으로 가서 못 들어오게 봉쇄를 하자고 했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상대는 회사 간부가 아니라 대사요. 대사? 그를 무조건 못 들어오게 막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강씨가 언성을 높였다. 그는 전승우가 꽉 막힌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수 대표도 대사의 말을 들어 보자고 하는 판국에 자기 혼자 반대하고 있었다. 무슨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들어 오는데 그를 앞에 두고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김대위는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강씨와 다른 대표는 김대위에게 물었다. 마치 그가 자신들의 입이 되어 주길 부탁하는 투였다. 김대위는 망설였다.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분명히 아무리 국민을 대표하는 대사라고는 하지만 회사 편만 일방적으로 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대표를 설득하기에는 그가 너무 빨리 왔고 설득이 되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문젭니다. 지금 사람들이 모여들어 환호를 지르는 판에 아무 이유없이 막는다면 내부 반발이 더 심할 것 같은데. 그는 회사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 말이오.”
“그게 말입니까? 알만 하신 분이. 저 사람이 와서 할 수 있는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가 있습니까? 대사가 여기에 들어오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것은 빨리 청소하고 일을 할 준비를 해라. 그리고 일을 하면서 합법적으로 쌍방이 자리를 잡고 부족한 게 있으면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하라! 이거 아닙니까? 그게 말이 돼요? 지금 대사가 여기서 하는 일은 회사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거 모르시고 하는 말씀 아니잖아요?”
“섣불리 대사를 막아섰다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김대위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말이나 들어보자고 계속 되풀이된 주장을 했다. 전승우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후회할 겁니다. 저 친구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아무것도.”
너무 분명한 문제에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힐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이 정문으로 다가가 환호를 질렀다. 더러는 냉담한 반응을 하기도 하고 항의성 발언을 했지만 대부분 대사가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 줄 거라 믿고 있었다.
“사우디 애들이 완전히 졸았군! 기관총까지 가져다 놓고, 누가 보면 전쟁 난 줄 알겠네.” 운전기수가 재밌다는 듯 말을 했다. 그는 옆자리 노무관에 비하면 여유가 있었다. 노무관은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초긴장이 되어 있었다.
정문 바리케이드를 지나 현장 안으로 들어가자 모닥불의 잔재에서 불꽃이 일고 노동자들이 규찰을 서고 있었다. 각목과 파이프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간간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우디 친구들이 보면 놀랄만한 일들이었다.
긴장된 하룻밤을 새워서 그런지 몰골이 말이 아닌 근로자들을 보자 운전기사의 말은 그쳤다.
현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대사가 왔다고 방송을 했다. 근로자들이 구경하기 위해 나오거나 차를 따라 달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곳곳에 불탄 승용차와 건물들 자재 더미의 잔해들이 혼란스러웠던 전날의 장면을 느끼게 해 주었다. 승용차는 노동자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니 바다 쪽에 인접한 광장이 나왔다. 그 안에 3,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광장 입구에서 차를 멈추어 서니 근로자들이 손뼉을 치며 환영해 주었다. 더러는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거의 해결된 거나 다름없었다. 만약 조직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이런 광경은 없을 것이다. 김지수는 사람들의 성향을 분석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 일을 소홀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다 한눈에 대표들이라는 알게끔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주변에 김대위가 눈에 띄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내가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대사님이란 호칭을 쓰며 대사 일행을 중앙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대사를 앞에 두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 사내를 말리자 그 사내는 화를 내며 할 이야기는 다 해야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와서 그 사내를 데려가고 나서야 대표인 듯한 사내와 이야기가 되었다. 대사는 실질적인 이야기는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자신의 국민에게 대표로서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표는 기꺼이 대사의 마음을 알고 단상으로 올라가게 해 주었다. 대사는 마이크 앞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전체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거의 5분의 길고 긴 시간이 흘렀다. 대사는 참으로 노련한 사람이었다. 대사는 근로자의 정서를 읽고 있었고 때로는 자신도 감성적이기 까지 했다. 대사는 견디기 힘든 침묵을 깨고 입을 뗐다. 그의 말은 침묵으로 끌어올린 긴장감으로 노동자들을 휘어잡았다.
“여러분, 늦어서 미안합니다. 소식을 듣고 최대한 빨리 온다는 것이 이제야 도착을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저 앞바다에 아침 해가 뜨고 있어요. 우리 다 같이 애국가를 부릅시다.”
김지수도 대사의 말 속에 빨려 들어가 아라비아 해를 불게 달구는 뜨거운 해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솟아올랐다. 거짓말처럼 근로자들이 하나 둘 새벽의 고요를 깨고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대위는 놀라운 대사의 행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사명 그리고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그대로 읽고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갔다. 애국가를 부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모양이군!’ 하는 남들이 애국가를 부를 때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저 정도는 돼야 대사를 하지 않겠소?” 김지수가 뒤에 다가와 김대위의 팔꿈치를 툭 치며 말을 했다. 김대위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낯익은 그가 중정 직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주 만나는군요.” 김대위는 순간적인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고 평범한 얼굴로 감추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동시에 일어났다. 사실 그가 왔다고 해서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모습일 수도 있었다.
“이게 어디 보통 사건입니까? 세계가 지금 이 소식을 본국에 타전하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해도 단단히 한 것 아닙니까?” 그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는 가까이 오지 않고 대사가 연설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대사의 온몸이 조명을 받듯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간밤에 지친 노동자들이 더욱 그를 우러러보고 남았다.
대사는 느닷없이 월남에서 참전했던 사람들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상당히 많은 수가 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월남대사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더욱 친근감을 높였다. 마치 적진에서 동지를 본 듯 구세주처럼 생각하게 하였다. 중요한 시기 대사가 사우디로 파견된 것만 봐도 현 정부가 그를 믿을 구석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월남이 패망한 이유가 분열과 이기심 애국심의 결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제 낮부터 여러분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이 컸을 것입니다. 이 꼴이 웬일입니까? 남의 나라에 와서 꼭 이래만 합니까? 나는 우리 절대 그럴 국민이 아니라고 믿어 왔기에 더욱 가슴 아픈 것입니다.” 서서히 대사가 자기의 본심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말일 이런 일을 고국에 계신 여러분의 가족들이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습니까? 이제 어제부터 있었던 일을 잊어버립시다.” 대사는 선동하듯 손을 치켜들고 목소리에 열을 다해 노동자들을 설득했다. 주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김대위는 대책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많은 대표도 그의 연설에 감복하는 눈치였지만 난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대표가 김대위와 눈이 마주쳤다. 강대표의 눈은 냉정해지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의 괴로워하는 눈은 대사의 의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대사의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의 결말은 뭔가? 그래서? 어떻게 하게 다는 건가? 그 답은 곧바로 나와 버렸다.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 넘기고 이제 청소를 하고 작업에 들어가자는 말이었다. 결국, 이야기의 초점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었고 다수가 옳다고 대답을 하기도 했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일어서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릅시다!” 대사의 사람 끄는 마법은 만세를 부를 때 절정에 달했다. 모두 일어나 만세 삼창을 하였다. 그것은 그의 마법이나 쇼를 보는 수준이었다. 김지수는 미소를 지으며 김대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김대위의 얼굴은 붉은 햇살에 벌겋게 변해 있었다. 김대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처음부터 대사를 들여오게 하지 말고 협상부터 해야 하지 않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대표들끼리 논란이 더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대사가 이 정도로 말을 해 상황을 정리하고 들어갈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요구 사항이 뭡니까?” 김지수는 김대위에게 물어보았다.
“글쎄요. 난들 압니까.”
“왜 그러십니까? 설사 김대위님이 여기서 구경만 했을까요?”
“중정이면 간첩 잡는 곳인데 왜 노사문제에 간섭하시려 듭니까?”
“아니 이게 어디 노사문젭니까? 오다 보니까 최소한 승용차 30여 대는 불에 탔던데. 이건 국가 안전에 관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박대통령 성격에 해병대를 파견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인 거 아닙니까? 하하하!”
“국가 안보가 문제가 되면 노동자들이 이렇게 혹독한 환경 속에서 노동하는 것을 고민하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저야 현장에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지만 워낙에 저 같은 말단 직원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이 더운데 파견 나와서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대리는 우물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김지수는 무슨 말인가 기다렸으나 입을 다물자 고개를 끄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차피 사건이야 터졌고 들어줄 수 있는 것을 들어줄 테고 불가능한 것은 못 들어줄 텐데, 아무래도 중요한 것이 책임자 처벌이 될 텐데. 사람 못할 짓이죠.”
김대위는 그 말에 화가나 얼굴이 붉어지며 더 말을 하지 않고 김지수 곁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숙소에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당장 일을 시작하자는 멍텅구리 녀석이 있다니까? 도대체 처음부터 왜 일을 벌인 거야!” 전승우가 고함을 치고 있었다. 모두 그의 이야기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숙소에는 구세주처럼 나타난 대사의 웅변은 사라지고 냉정한 현실적 분위기가 찾아왔다.그는 발아래 있는 깡통을 걷어찼다.
“지금 조별로 연락해서 일단 대기하라고 하고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하십시오. 괜히 잘못 처리하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 죄만 뒤집어쓰고 귀국조치만 됩니다. 귀국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 성과도 없이 피만 보고 끝을 낼 수는 없으니까요. 이거 뭐 화 풀자고 한 일은 아니니까요.” 강씨의 차분한 말에 다들 동의를 했다.
“그러기에 애초 대사를 정문에서부터 들여보내지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거 어떻게 수습할 겁니까?” 전승우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김대위도 우려는 했지만, 대사가 단 한 번에 사람들을 해산시킬 만큼 위력을 발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형 너무 화를 내지 말고 진정을 합시다. 지금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 아니겠습니까.” 김대위가 나서서 그를 달래어 자리에 앉혔다.
“어차피 여기서는 다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대사가 아무리 말을 잘해 사람을 달래났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소득이 없으면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쪽에서는 함부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다시 저항을 할 경우 수습에 대한 차원이 틀어지니까요. 일단 협상을 준비하는 데 집중을 합시다. 협상은 몇 시에 하기로 했습니까?”
“아침 7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빨리요? 준비하기도 벅차겠군.” 김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대위님 그런데 협상도 좋지만 안 들어주면 어떡할 겁니까?” 전승우가 따지듯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죽어도 놈들이 들어주지 않겠다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그럼 전형은 지금 협상 말고 다른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 싸움 하루 만에 협상이니 뭐니 나온다는 것이 그 결과를 겪어 보지 너무나 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앞에 기관총을 들이대고 있는데 무작정 끌고 가기에는 너무 상황이 부담스럽잖아요.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고 보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노동자들이 등을 돌릴까 무서워서요. 그게 제일 두려운 것 아닙니까?” 김대위도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승우는 기관총이란 말에 할 말을 잊었다. 확실히 그들은 총을 들이대고 위협을 하고 있었다.
“기관총, 그래 무섭기는 하죠.”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말을 해봐야 서로 다른 입장만 확인할 뿐이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위도 더는 대화를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전승우는 주먹을 쥐고 참기 어렵다는 듯 한마디 외치고는 숨을 내 쉬었다. 그는 얼굴을 문질렀다.
“하긴, 몇 명이 함께 싸울 바에야 하지 않는 게 났죠.” 전승우는 입술을 깨물고 자신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과라는 게 너무 무기력하게 나올 것이 너무 분명했다. 그가 보기에도 여러 가지 정황이 좋지 않았다. 주변에 둘러 서 있는 대표들만 불쌍해졌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대사가 뛰어났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대사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 다수가 대사에 대한 신뢰가 큰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전승우는 손을 털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는 자신들의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협상장에 들어가 잡고 거의 20개의 조항에 이르는 협상안에 대해 다시 검토를 하였다. 현실에 맞게 협상안은 조절하려 몇 개가 뺐다.
협상에 나갈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1)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회사 측의 보복 등으로 말미암은 근로자들의 희생이 없도록 할 것.
2) 근로자에 대한 구타행위를 금할 것.
3) 현재의 관리직원 전원을 교체할 것.
4) 사원과 기능공과의 차별대우를 바로잡을 것.
5) 복지후생시설을 개선할 것.
6) 현행 근로계약 기간 2년을 1년으로 단축하고 연장근무를 희망하는 자에게는 연 3회의 유급휴가를 실시할 것.
7) 국경일 휴무 및 주 휴무를 철저히 할 것.
8) 주 48시간 급여제를 시행하고 임금을 백 퍼센트 인상할 것.
9) 상여금을 연 3백 퍼센트 지급할 것.
10) 동일 직종의 임금수준을 평준화할 것.
11) 근로자의 귀책사유 탓인 차량 파손의 경우에도 변상조치하지 말 것.
12) 모든 상해는 공상으로 처리할 것.
13) 이미 체결된 근로계약서를 개선되는 조건에 맞도록 갱신해서 재체결 할 것.

“결국, 승인은 회장이 해야 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돈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을 것 같군.”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맞는 말이다. 왕회장이 돈 문제라면 양보를 할 리가 없다.
이제 협상만 남았다. 협상단을 짜는데 어떻게 할까 여러 논의 끝에 직종 대표 전체가 들어가자고 했다. 문제는 전승우였다. 그는 어디에 있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지 않자 자기만 빠지려고 한다고 성토가 나올 무렵 거의 10분 전에 그가 나타났다. 그의 검은눈은 충혈 되어 있었지만 날카로운 기는 살아 있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것에 사과를 하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다. 협상 논의를 대충 설명을 해주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마지막 발언을 돌아가면서 하였다. 거의 말이 끝났을 때 황씨가 들어왔다. 미안해서 격려해주려고 왔는가 보다 해는데 뜻밖에 자신도 대표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전승우 대신이라고 말을 했다.
“여기 들어가는 게 뭘 뜻하는 알우?” 강씨가 물었다.
“알다마다. 그래서 가는 거지! 내가 빠지는 것도 우습지 않나?” 황씨의 말에 전승우는 어이없는 웃음을 흐리며 그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는 그를 막았다. 그는 이중에 누가 빠져야 한다면 그건 전승우가 아닌가 말을 했다. 강씨는 알아서 하라고 말을 하고 후회는 하지 말라고 했다. 김대위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전승우는 자신만 빠질 수 없다며 앞으로 나가려 하자 강씨가 팔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나가고 뒤에 황씨가 나가고 다른 사람이 전승우를 뒤로 당기고 한명씩 앞으로 나갔다. 밖에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대표들을 한명씩 환송을 하였다. 숙소에서 김대위와 전승우는 제일 나중에 나와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협상을 시작하자 광장으로 몰려가 협상 결과를 기다렸다. 협상은 7시부터 시작되어 장시간에 걸쳐 논의하였다. 거의 12시가 넘어서야 협상은 1차로 마무리를 했다. 12시 반부터는 노동자들에게 협상 결과에 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김대위는 사람들 뒤에 앉아있는데 현장 잠바를 입는 소탈한 차림의 김지수가 다가왔다. 김지수는 밝게 웃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김대위에게 담배를 권했다. 김대위는 담배를 외면했다. 김지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길에 내 뿜었다.
“자, 긴장 풉시다. 협상도 다 끝이 났는데. 결국, 책임자 처벌에 관한 문제가 걸리더군요. 항상 그게 문제기는 하지만.” 김대위는 그 말에 관심 없다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지수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댔다.
잠시 후 협상을 마치고 나온 대표들이 광장으로 들어왔다. 그들끼리 의견을 조정하더니 강대표가 단상에 올라와 타협이 이뤄진 내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불만족스런 내용이었다. 책임자 처벌과 상여금 문제는 이곳에서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 단호했고 돈 문제도 그랬다. 단지 대사관에서 처벌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말뿐이었다.
“김대위님은 처벌자 명단에 포함되지는 않을 겁니다.” 김지수는 작은 소리로 김대위의 귀에 대고 말을 했다.
“나는 그런 부탁한 적 없소.”
“큰 작은아버지가 고위직에 있더군요.” 김지수는 지나가는 말로 둘러보며 말을 했다. 김대위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 일에 주동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이지 않고, 대표에도 들어가지 않았잖아요. 또 말이 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각박한 현장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김대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귀에서 알 수 없는 울림이 들렸다.
“이번 사건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하루 이틀 사이로 본국에서 중정 감사가 뜹니다. 국무총리도 방문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본국에서는 충격이 큰 것이겠지요. 지금 제가 제일 고민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첫째가 집단추방에 대한 염려입니다. 터키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추방당한 경험이 있어 신경이 꽤 곤두서는 문제입니다. 단지 이 회사만의 문제는 아닐까요. 그리고 둘째가 여기에 있는 사람 몇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이곳 사우디 법정에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본국에 송환되면 그것도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이곳 사우디 법에 비하면 차라리 백번 나을 겁니다. 김대위님도 제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도 어쩔 수 없지만. 하여간 언제 또 봅시다.”
그는 김대위 어깨를 손을 얹고는 자리를 떴다.
협상 결과에 많은 노동자가 반발했지만 말뿐이었다. 이미 싸움 끝났고 대부분 노동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상적인 노동을 하고 싶어 했다. 사우디의 법이 엄한 것이 두려울 수도 있었고 이국만리라 더욱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
14일 밤 사우디 경찰은 주동자 5명에 구속하고 폭력을 써 노동자의 폭동을 일으킨 직원을 출두 조사하였다. 대사가 사우디 정부와 협상하여 구속자를 18일 이후 석방을 하고 본국으로 추방하였다. 본국으로 추방된 노동자는 20명이고 회사 직원은 5명이다.
25명이 다란 공항을 출발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버스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 뒤로 나온 노동자들은 5명의 관리자와 따로 떨어져 버스에 태워졌다. 중정에서 파견된 사내들이 노동자들을 버스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79년 여름, 김지수는 귀국을 앞두고 ‘제다’ 현장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집단 소요가 발생해 조사하러 그곳에 갔을 때, 공교롭게 협상장에서 김대위를 볼 수가 있었다. 김대위도 연장 근무 마지막을 근무하고 있었다. 그도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아홉수가 안 좋은가 봅니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폭력사고가 일어나니 말이요. 근데 김대위님 귀국 며칠 안 남았다고 하는데 조용히 지내시다 가시지 그 틈을 못 참고 여기서 일을 벌이고 있습니까?”
“글쎄 말이오. 내가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생긴다고 보기에는 그렇고,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만큼 현장의 현실이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말 그대로 귀국 며칠 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갈수록 소요가 늘어납디다. 이곳 중동에 적응하느라 그러는 줄은 모르지만 다들 충돌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다 한국 사람들 다혈질이라 그런 것 아닙니까?”
“한국 회사들이 오로지 노무비 아껴서 공사비를 빼먹으려 하니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요. 인정합니다. 그 틈바구니에 저도 일이 있는 거고요.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말입니다. 저는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아 조만간 귀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문제만 처리하고 들어갈 겁니다. 혹시 국내에서 만나면 소주 한잔합시다.”
“그럽시다.”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큰작은 아버님 만나면 좋게 말 한마디 해 주십시오.”
둘은 그렇게 헤어졌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었다. ‘제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농성이 좀 더 길게 갔다.

동호는 숙소에 들어갈 때마다 시체 탄 냄새를 느끼곤 했다. 숙소 위 고압선을 볼 때마다 고압에 매달린 자기 또래의 사내가 떠올랐다. 그는 교통위반으로 교도소를 다녀오고 귀국 날짜를 받아 놓고 자살을 했다. 교도소 안에서 아랍 사내들에게 성폭행한달 내내 당해 출소하고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귀국 일주일 전에 지붕 위에 올라갔다. 시체 타는 냄새는 그가 밤마다 성폭행을 상상하게 하고 그의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좁은 남한 땅 어디서 어찌하여 이곳 이국만리까지 와서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비극적인 일이다. 단지 가슴으로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지만, 그저 젊은 놈 하나가 고압에 매달려 자살을 한 것이다. 그뿐이었다. 단지 냄새가 날 뿐이었다. 살 태우는 냄새가, 다른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하지만 동호에게는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멋있고 거대하고 집단적인 것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높은 빌딩이나 밀집된 도시, 길고 길게 놓인 다리와 대단위 공장 단지를 보지만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자들, 피하고 싶은 자들, 실패한 자들, 뒷골목을 헤매거나 늘 술에 취해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을 사내들,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는, 인생 실패자들의 의미로서 딱 한마디가 그들이 생각하는 노가다들이 아닐까? 너저분한 작업복에 기름 묻은 장갑과 흙 묻은 작업화 그은 얼굴과 거친 말투는 일반사람들이 동경하는 생활에서 우주 끝만큼이나 동떨어진 개념들이다. 길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저 일만큼 할 수 없는 그들이 바로 동호 같은 이들이다. 그들이 인권을 따지고 주장한다는 것은, 거의 4.19 혁명과 같은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동호도 귀국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몇 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하기로 했다. 정씨는 77년 파업 이후, 줄곧 관리자들과 부딪쳐 싸우더니 끝내는 조기귀국이 되었다. 그도 계약 만기로 귀국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귀국한다는 것은 20명 지도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 짓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자주 관리자들과 다투었다. 어느 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식당에서 밥을 먹다 말고 의자를 딛고 식탁에 올라가 선동을 하였다. 그 전날 또 한 사람이 산재를 당했던 것이다. 식판이 일제히 던져지고 몇 장의 유리창이 깨지고 일이 중단 되었다. 도망치는 관리자도 없고 기관총을 들고 쫓아오는 방위군은 없었지만, 그는 선동죄로 조귀 귀국해야 하였다.
정씨가 떠나던 잠을 자지 못했다. 동호가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 보니 정씨는 어두운 침상에 걸터앉아 몇 시간을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아직 본적이 없는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나오는, 진심 어린 기쁨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은 할 수가 있었다.
그가 떠난 삼 개월 후 1979년 6월 동호도 계약만료가 되어 귀국하게 되었다. 그가 귀국하고 나니 소문에 항만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번에는 좀 더 길에 일어났고 사우디 경찰이 진압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들렸다. 처음에도 그랬듯이 신문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그해 겨울, 대통령 암살사건이 터지고 그렇게 동호의 청춘과 중동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 고통과 분노가 70년대에 묻히어 서서히 꺾어지고 있었다.

후에 당시 대사로 근무했던 유대사는 자기가 겪은 내용을 비망록으로 세밀하게 기록을 하여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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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베이징에서 온 형9-플로리다 장씨  칼럼니스트 10·08·15 2995
177   베이징에서 온 형8- 회식  칼럼니스트 10·08·09 3109
176   좀비  칼럼니스트 10·07·14 3204
175   베이징에서 온 형 7-아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칼럼니스트 10·06·18 3273
174   베이징에서 온 형6 - 사장  칼럼니스트 10·04·22 3085
173   베이징에서 온 형5 - p.v.c 닥트  칼럼니스트 10·04·22 3080
172   베이징에서 온 형4 - 내 일당  칼럼니스트 10·04·19 2808
171   베이징에서 온 형3 - 양씨 아저씨  칼럼니스트 10·04·18 2710
170   베이징에서 온 형2 - 오늘은 우울한 날이다  칼럼니스트 10·04·18 2751
169   베이징에서 온 형  칼럼니스트 10·04·12 2467
168   한 친구가 다친 날  칼럼니스트 10·01·26 3287
167   신년 산행  칼럼니스트 10·01·02 2781
166   이십팔일째, 씁쓸한 퇴장  칼럼니스트 09·12·30 2896
165   이십일째-작업완료  칼럼니스트 09·12·21 2963
164   열나흘째, 경쟁  칼럼니스트 09·12·11 3101
163   열흘째, 세계를 굴리는 손 2  칼럼니스트 09·12·07 3038
162   나흘째, 민방위 모자  칼럼니스트 09·12·01 3110
161   첫날, 불확실성의 원리  칼럼니스트 09·11·28 3215
160   우울한 날 우울한 소식  칼럼니스트 09·11·27 2958
  사막에서 일어난 짧은 소요 혹은 폭동에 대한 이야기 3  칼럼니스트 09·10·19 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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