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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아메리칸 앨리   조회 : 1056   
분류
소설
지은이
마린
펴낸이
황규관
발행일
2013년 11월 29일
분량
248쪽
크기
140mm×210mm
ISBN/ISSN
978-89-6655-035-7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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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
11,000원
독자평점
( Not Examination )

 

도서 소개



“뭘 위해 우린 이렇게 사는 걸까? 이러다 결국 어떻게 될까?”
고립된 일상, 재채기처럼 밀려오는 파국의 징후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등단한 마린(필명) 작가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집 『아메리칸 앨리』를 냈다. 마린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에게 밀려오는 파국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 어떤 사람들이 있다. 전기가 끊긴 집에서 동화책에 탐닉하는 중년 사내, 말일만 되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분주해지는 보험사 직원, ‘주리’이기도 하고 ‘문자’이기도 한 노년 여성, 아내와 아이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가장, 공포영화와 미용실 여성의 가위질을 탐닉하는 세차장의 젊은이, 이미 볼 장 다 본 일상의 권태를 동창생과의 전화로 푸는 한 주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살아 있음’과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상태의 중간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살아 있다는 건 문제될 것이 없는 상태다. 살아 있으나 죽어 있다는 건 그 어떤 희망이나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아메리칸 앨리』의 인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현실을 부유하고 있다. 그들은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정작 공간에 고립되어 있으며, 타인이나 상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아메리칸 앨리』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각자 공간에 갇혀 고립되어 있다.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그들 모두는 관찰자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들의 관찰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고 평가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강제에 의해 그 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켜보는 일뿐이다. 문제를 가진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파국을 향해 간다. 그들은 그에 대해 어떤 대안도 평가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다.
-244쪽, 김대현 문학평론가의 해설 「보는 자와 보이는 자」부분

위 지적처럼 삶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삶의 중심이 될 수 인물들의 무기력함은 곧, 소설을 보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 앞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메리칸 앨리』를 보고서 살갗이 살짝 베인 듯 아프다면, 당신 또한 세계에 의해 밀려난 사람들이거나 그들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비자발적 가난과 고뇌, 그리고 삶에 대한 환멸. ‘동정 없는 세상’ 한가운데에 선 인물들은 쓰러질 듯 쓰러지지는 않으면서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다. 소리가 들리는가. 속에서부터 온몸을 타고 올라오며 재채기처럼 닥치는 파국의 징후들이.


“그녀는 중얼거린다, 아직은 낫 배드”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산책법


표제작 「아메리칸 앨리」에서 문자는 한때 기지촌에서 몸을 파는 여성이었다. 군인들의 관심을 받던 ‘그녀의 호시절’은 가고,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오래돼 ‘팔리지 않는’ 몸과 스스로를 애써 부여잡는 독백뿐이다.

삶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고 삶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 시절과는 달리 돌아갈 고향도 없어졌다. 어디를 봐도 다른 삶은 없다. 삶의 가능성은 협소해졌고, 우리가 자유롭게 누릴 공간도 더 줄어들었다. 삶의 목표도 공허해졌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삶이 막다른 길로 와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무산, 「노동규율을 교란하는 노동 인문학이 필요하다」부분, 『리얼리스트 9호』, 삶창, 2013.

백무산 시인이 최근 한 문예지에 기고한 글에서 지적하듯, 지금-여기 우리의 삶은 점점 고립되고 피폐해져 가고 있다. 고립된 일상의 불안 위에서 파국의 징후는 재채기처럼 스멀스멀 밀려온다.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님에도 그 모든 책임은 각각에게 부여된다. 그럼에도, 생은 계속된다. 간신히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여건과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낸 스산한 ‘아메리칸 앨리’에서 문자는 최소한의 움직임과 간결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생을 지켜낸다(「아메리칸 앨리」). 화려한 수식의 희망도, 극한의 절망도 갖지 않은 채 묵묵하게 버티어낸다. 전기가 끊긴 집에서 사는 소년과 그의 식구들은 아버지의 자살 이후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고(「나쁜 꿈」), 말일만 되면 압박감에 시달리는 보험사 직원(「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메리칸 앨리』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이토록 살벌한 ‘네오 리버럴’ 시대, 그러니까 비정규직인 남편을 원망하게 되고, 다른 이의 취직 소식에 축하보단 시샘이 앞설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기어이 삶을 놓치지는 않는다.

“살기 위해 그러는 거지, 뭐. 겨우 존재하기 위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자모회에도 나가고, 나이 들어 체중이 늘기 시작하면 에어로빅 교실에도 가고, 조깅도 하고, 더 나이 들어 힘 빠지면 노래 교실에라도 가서 거칠어진 목소리로 노래라도 불러야겠지. 그거 다들 살아내려고 그러는 거다.”
-130쪽, 「열한 시의 빛」부분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은 살살, 느릿느릿 산책을 한다. 멈추지도 않고 갑자기 빠르게 걷지도 않는다. 이미 자신들의 삶에 익숙해진 ‘산책법’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간다. 머릿속에서는 하늘 높이 날더라도 결국 두 발은 대지 위에 딛고 사는 게 사람의 운명이기에. 그러니 김대현 문학평론가가 해설에서 지적한 ‘무기력함’이 꼭 허무함과 절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세계의 강제에 의해 관찰자의 위치로 밀려난 사람들은 때때로 무기력하며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했듯 읽는 이에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지금이 ‘비상 상황’임을 주지시킨다. 이는 곧 파국의 징후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버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때도 있다. 「아메리칸 앨리」의 문자가, 「나쁜 꿈」의 소년이, 「강」의 수가, 「계곡에서 하룻밤」의 가장이 그렇듯. 그렇다면 그들은 ‘재채기처럼 밀려오는 파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버티는 것만이 답인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은 소설은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아메리칸 앨리』는 파국의 징후를 보여주고,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산책을 따라 걸으면서 읽는 이에게 되묻고 있는 것이다. “뭘 위해 우린 이렇게 사는 걸까? 이러다 결국 어떻게 될까?” 당신은 답을 알고 있는가. 이야기는 책장을 덮은 그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저자 소개
마린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고, 인하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서 단편소설 「나쁜 꿈」으로 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 서울문화재단에서 예술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목차 안내
스무 살
나쁜 꿈

아메리칸 앨리
열한 시의 빛
계곡에서 하룻밤
세차장 옆 미용실
전화벨이 울릴 때

해설_ 보는 자와 보이는 자_ 김대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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